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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이야기

김홍파 나이 프로필 키 본명 학력 배우 출연작 영화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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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홍파 프로필

 

본명 : 김홍재 (金弘載, Kim Hong-Jae)
출생 : 1962년 1월 5일 (59세)
고향 : 경상남도 부산시
국적 : 대한민국
데뷔 : 1992년 연극 '백마강 달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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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파 배우 데뷔 전

 

1970년 부산 영도. 이른 아침 여덟 살 소년 김홍파(본명 김홍재)는 학교를 땡땡이 치고 집 근처 허름한 극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당대 최고의 액션 스타 고(故) 박노식 배우(1930~1995)가 나오는 '남대문 출신 용팔이'를 보기 위해서였다. 시간은 아침 8시 무렵. 소년의 눈빛은 기대와 설렘으로 반짝였고, 그렇게 첫 상영 순간이 다가왔다. 좌석에 앉은 소년의 주위로 서서히 어둠의 장막이 내리깔리며, 영사기가 쏘아댄 하얀 빛줄기가 머리 위 직선을 그리곤 눈앞의 스크린에 내리꽂혔다. 그렇게, 영화라는 세계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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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곧바로 매혹됐다. 불의를 못 참는 사나이 용팔이(박노식)는 소년에겐 그야말로 우상이었다. 그가 거리의 무뢰배와 마주했을 땐 소년의 심장은 마구마구 두근거렸다. 현란한 액션으로 적들을 멋지게 두들겨팰 땐 통쾌함에 온몸 가득 전율이 일었다. 소싯적 헤어진 여동생을 찾아헤매는 광경에선 저도 모르게 목이 메었고, 극 말미 마약밀매단 소굴로 진입해 적들을 일망타진할 때엔 흥분의 쓰나미가 온 가슴을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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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저런 멋진 배우가 되겠다.' 이후 소년은 틈만나면 혼자 극장가를 누비고 또 누볐다. "어무이, 나 태권도 배울게요." 용팔이처럼 되려면 일단 육체 단련이 필요하다 여긴 것일까. 아무도 시키지 않았으나 중학생이 된 소년은 태권도부터 배운다. 미친 듯이 빠져든 탓에 배우라는 꿈도 잠시 잊고 만다. 

 

목표 하나가 더 생긴 것이다. '아프리카에 우리 태권도를 보급해보자.' 그렇게 중·고교 시절 선수로 뛰었지만 이내 그 꿈은 바스라진다. 약한 척추가 문제였다. "잠시 운동 좀 쉬어야 한다"며 동네 의사가 강권했을 땐 이미 시합이 보름 남은 시점. 포기하긴 싫었고 결국 시합에 나간다. 그러다 부상을 입어 1년간 꼼짝없이 누워 지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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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야 할 길은 배우뿐이다.' 8세 때 꿈이 재귀한 것도 그즈음. 소년은 더는 고민하지 않았다. 고교 3학년 무렵 학교를 자퇴했고, 혈혈단신 서울로 간다. "이놈이 미쳤구나." 어머니의 격한 반대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연고 없는 대도시에서 아침엔 신문배달을 오후엔 막일을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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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싸매며 검정고시를 준비했고, 스스로 졸업장도 따낸다. 하지만 그의 20대는 모진 풍파의 연속이었다. 그 중심엔 아들의 꿈을 말리려는 어머니가 있었으니, 모자 간 갈등은 무려 10여 년간 지속된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나이 서른이 되자 그는 드디어 극단에 입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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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파 배우 데뷔

 

1992년, 연극 '백마강 달밤에'로 데뷔하여 20년 가까이 대학로에서 연극 무대에 올랐다. 영화로는 1996년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높으신 분들 전문 배우. 특히 경찰청장, 교도소장 같은 쪽 높으신 분 역을 많이 했다. 반면 악랄한 범죄자 최종보스 역도 꽤 있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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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연도가 1992년이었으니, 그때 나이 서른.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에 배우가 됐고, 이후에도 십 수년 무명의 비애를 감내한 그다. 2010년대 들고부터 대중에게 얼굴을 서서히 알렸으므로, 그때 이미 40대 중·후반. 2012년 '범죄와의 전쟁' 엄 실장으로 단역 출연하기까지 이렇다 할 화제작이 없었다. 그러나 이후부턴 사뭇 달라진다. 2013년 초 '신세계'의 김 이사로 조연 역을 따내더니, 그해 여름 '더 테러 라이브'(2013)의 주진철 경찰청장을 호연해 화제의 배우로 비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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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김구로 분한 '암살'은 그해 여름 그에게 안긴 생애 첫 천만 영화다. 같은해 겨울에도 '내부자들'의 오현수 회장으로 분해 부패 기업인의 초상을 실감나게 표현해낸다. 2016년에는 970만 관객을 모은 '검사외전' 교도소장 역을 맡았고 이후 숱한 장르물을 거쳐 올 여름 첩보 블록버스터 '공작'(감독 윤종빈)에 이북 간부 김명수로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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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홍파 긴 무명시절에 대한 인터뷰

 

연극 무대에 20여 년 오르며 참 괴로웠어요. 배우로서 근본적인 고민을 늘상 했던 거지. 내가 다른 사람을 충실히 살아내려고 20년을 정말 지랄 염병을 다 했는데 극이 끝날 때마다 힘이 들고 지치고 그 사람이 아닌 내가 보이는 것 같아. 김홍파가 아니라 김홍파가 연기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하는데 그게 아닌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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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게 늘 두려우면서 20년을 해결 못 하고 끙끙댔어. 몸살도 자주 났고. 어느 정도였냐면 혼자 분을 못 참고 벽에다 헤딩을 하며 자학까지 했을 정도였으니. 그럴 지경이니 어느 날부터 잠도 잘 못 자겠더라고. '배우란 뭔가'에 대한 답은 이미 갖고 있는데, 그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답이 눈앞에 있는데, 내가 그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노력을 해도 그게 안 되는 내 자신이 너무 싫고 괴로운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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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홍파 집안

 

금수저 집안이었어요. 잘사는 재력가 집안인데, 우리 아버지가 자수성가한 분이에요.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고 당시에 제지업계에 종이 만드는 기계가 없으니 아버지가 그걸 전부 스스로 개발하셨어요. 국민학교 다닐 때 아버지를 가만히 지켜보면, 당시에 친척들까지 해서 열한명이 모여 살았어요. 당신이 밤 새워 노력해서 종이 만드는 기계 16종을 개발했어요. 그러고 나서 사업이 대단히 번창을 했죠. 집에 공공칠 가방을 들고 오는 사람들을 어릴 적에 자주봤어요. 기계를 갖고 가려면 돈을 줘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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