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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이야기

쟈니윤 별세, 그는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가

 

 

 

안녕하세요. 하비무옹입니다. 오늘 다소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는데요. 코미디언 쟈니윤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인데요. 뒤늦게 알게된 그의 이력과 업적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한번 다 같이 살펴볼까요.

 

쟈니윤씨는 미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약했고, 1989-1990년에 '자니윤쇼'로 한국 방송 통틀어서 최고 MC로 대접 받기도 했던 인물입니다. 본명은 윤종승씨로. 미국식 이름은 'Johnny Yune'입니다. 쟈니윤씨는 국적회복을 통해 현재 미국과 한국 복수 국적을 취득한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쟈니윤씨는 1936년 10월 22일 충북 음성군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원래는 1959년에 대한민국에서 방송인으로 첫 데뷔를 한 후 한동안 MC생활을 하였으나, 1962년에 해군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건너가게 되지요. 그리고나서 제대 후 그냥 미국에 정착하여 알바를 무려 세개씩이나 하고, 열심히 공부를 한 끝에 오하이오 웨슬리안 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하게 됩니다.

 

 

 

 

쟈니윤씨는 1964년부터 뉴욕에서 무명 MC 겸 코미디언 생활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미 그때 뉴욕의 '텔 아비브'라는 카페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스탠드업 코미디 양식을 개발하여, 시도한 결과 이때부터 그의 스탠드업 코미디는 미국인에게 먹힌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합니다.

 

특히 쟈니윤씨가 적극 푸시했던 방법으로는 자극적인 소재나 욕설, 폭력 등의 천박한 방법을 하나도 안 쓰고, 보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동양인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비하, 성적 풍자, 정치풍자 등을 간결하게 툭툭 던지고 넘어가는 식으로 즉 자학개그로 미국인들을 엄청 웃게 만든 것이지요. 프라이드 높은 미국인들에게는 다소 신선한 소재였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다 1977년 산타 모니카 코미디 클럽에서 쟈니윤씨는 미국의 유명한 코미디쇼인《투나잇 쇼》의 MC 자니 카슨에게 눈에 띄게 되었고, 그에게서 제의를 받아 아시아인 최초로 《투나잇 쇼》에 출연하는 성과를 냅니다. 제일 처음 출연은 간단하게 스탠딩업 코메디만 하려고 했다고 하죠.

다음 출연인 대배우 찰턴 헤스턴이 갑자기 사라져서 대타로 급히 쟈니윤이 20분 가까이 카슨하고 시간을 끌어야 했는데, 나중에는 시간 끌려고 불렀다던, 어렸을 때 어머니가 자주 불러주셨다는 이태리 가곡 오솔레미오까지 불러서 자니 카슨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고 하죠. 그의 순발력에 놀랐었나봅니다.

 

그리고나서 재밌는 일화가 있는데, 오기로했던 찰턴 헤스턴이 늦게 도착해 드디어 착석했는데 옆에 앉아 있던 쟈니윤이 그에게 "내가 당신이 출연한 벤허를 5번 봤어요"라고 말하는데요. 헤스턴이 고맙다고 말하자, 쟈니 윤은 재치있게 "5번 본 건 그 영화가 좋아서가 아니라 내가 그때 영어 대사를 못 알아들어서"라고 조크를 쳐서 모두를 웃기게 되죠. 유명한 일화라고 하네요.

이때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잘 순발력있게 대처한 쟈니윤을 자니 카슨은 매우 마음에 들어했고, 그 결과 무조건 한 달에 한번씩은 자니윤을 초청하라고 피디에게 지시했다고 할 정도로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그 덕에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고, 7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기까지 자니 카슨 쇼에 총 34번을 출연하는 등 미국 스탠딩 코미디 업계의 일명 네임드로 활약하게 됩니다.

 

한때는 NBC방송국과 전속계약을 하며 '자니 윤 스페셜 쇼'를 진행하는 등 큰 인기를 끌게 되는데요. 백인들은 함부로 못 건드리는 예민한 문제들을 동양계 이민자로서 잘 모르는 것처럼 시치미 떼고 건드렸다가 얼른 빠지는 식의 각종 드립을 치며 넘어가는 게 그의 전형적인 개그 루틴이었다고 하죠. 그렇게 수준 높은 고난도 블랙 코미디를 구사하며 일세를 풍미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뉴욕에서 인기가 떨어지자, 쟈니윤씨는 80년대 중반부터는 도박의 도시인 라스베이거스로 진출하기로 합니다. 당시 카지노 호텔 공연으로 주급을 2만 5천 달러나 받았는데, 1년의 절반을 라스베이거스에서 보냈다고 하는데요. 계산해보면 라스베이거스에서만 대략 1년에 60만 달러 이상의 돈을 벌어들인 셈이네요. 이 때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고 합니다.

 

쟈니윤씨는 이후 89년에 귀국하여 조영남을 보조 MC로 두고 자신이 메인 MC가 된 그 유명한 '쟈니윤 쇼'를 진행하여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이 인기로 인해 쟈니 윤씨는 고국인 한국에서도 스타덤에 올랐고 광고를 여러 개 찍기도 했으며, 이 자니윤 쇼로 한국에서 그의 이름이 알려졌을 때의 나이가 이미 50대 중반이었다고 하니 꽤나 오랜기간동안 화려한 업적을 낸것은 저명한 사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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